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성군 중에 성군은 세종대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조선시대 왕 중 하나인 세종대왕.세종대왕(1397년~1450년)은 조선시대 4번째 왕입니다.한글을 창조한 세종대왕 업적을 기리는 한글날은 10월 9일입니다.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는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는 기념일인데요.오늘은 한글날의 세종대왕 업적을 8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세종대왕 업적 썸네일세종대왕 업적농사직설 간행-당시 조선의 농서는 원나라에서 편찬했던 농상집요 같은 중국 농서가 전부였습니다. 이는 조선의 절기와 맞지 않았고, 불편을 겪던 농민들에게는 우리 실정에 맞는 농서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세종대왕 11년에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농사직설이 편찬됩니다.-농사직설 내용 : 논밭갈이에 관한 내용, 종자 선택과 저장법, 삼 벼 기장 등의 재배법 등 총 10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농사직설 의의 : 농상집요(고려 후기)-농사직설(조선 초기)-농가 집성(조선 후기)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여러 농서들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또한 조선 풍토에 맞게 서술되었다는 것이 의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은 500년 조선 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치적을 남긴 임금이기도 해요.

특히, 세종대왕 업적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한글' 그리고 '훈민정음'은

현대,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북한의

공용문자로 사용될 만큼 깊은 관련이 있죠.

또하나, 이 때에 확립된 북방의 국경을

그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기에

문화와 영토 그리고 법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이 인물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세종(世宗)

휘, 이름 : 충녕대군 / 이도(李裪)

성별 : 남자

출생 : 1397년 05월 15일

~

사망 : 1450년 04월 08일(약 52세)

거주지 : 조선

직업 : 임금, 王

아들 : 문종, 수양대군 / 손자 : 단종

후임왕 : 문종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 많은 부분들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한국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설문조사에서 항상 이순신장군과 함께

1위, 2위를 다투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인물의 어린시절은

어떠했길래 이렇게 수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걸까요?

1. 태종인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6남으로 태어났다.

2.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자, 대군으로 진봉되었다.

3. 한번 잡은 책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읽었다.

4. 망나니 세자인 형을 못마땅해했다.

이렇게 알려져 있어요.

그렇다면, 이 인물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을까요?

아버지 : 조선의 제 3대 국왕인 태종으로

2번의 왕자의 난과 자신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지만,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약 두달 후에 양위한다.

어머니 : 여흥 민씨로 부원군 민제와

삼한국대부인 송씨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학식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인물.

또한, 남편인 이방원을 왕위에 오르게 한

킹메이커이자 이시대의 여장부.

라고 알려져 있어요.

특히, 태종의 경우

자신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만큼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장자 계승의 원칙'을 강조했지만

첫째였던 양녕대군의 행실로 인하여

6남이었던 충녕대군(=세종)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세종대왕 가계도를 보면

태조 > 정종 > 태종 > 세종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한국사 최고의 성왕이라

불리는 세종대왕 업적은 무엇이 있을까요?

1. 농사직설 편찬

2. 대마도 정벌

3. 4군 6진 개척

4. 집현전 설립

5. 고려사 편찬

6. 훈민정음 반포

7. 앙부일구, 해시계

8. 애민정책

등이 있는데요.

이렇게 봐서는 어떤 업적들이었는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서 하나하나 이야기 해볼게요.

첫번째인 농사직설

조선시대 그리고 세종 때에 발간된,

조선 농사에 대한 방법을 정리한 책이라 해요.

농사직설이 편찬되기 전에는

원나라, 그러니까 중국에서 사용된

농사방법을 사용했지만

조선의 땅에는 맞지 않아서 농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고 해요.

특히, 조선의 경우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더욱 개선안이 필요했죠.

그래서 정초, 변효문 등의

신하에게 왕명을 내려

'조선만의 농사법'을 알려주는

책을 만들도록 한 것이라 해요.

이에 신하들은 전국의 우수한

농사꾼들을 모아놓고

경험을 담은 농사직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 신하들이 만든 거 아냐? 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왕의 명령과 지시가 없었다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왕의 명령이 있었기에

해당 작업들이 진행된 것이기에

업적 중에 하나로 남겨져 있답니다.

두번째, 집현전 인데요.

집현전은 조선의 학문을 연구하거나

국왕의 자문 기관으로

세종때 확대 및 개편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경전과 역사강론,

임금의 자문을 담당했어요.

* 역사강론은 왕족이 받았다고 함.

세번째, 4군 6진 개척

세종대왕 시기에 계획 및 개척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요.

물론, 해당 부분들이 조선의 영역이긴 했지만

당시에 여진족 등이 강제로 거주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재정비하는 지시를 내렸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과 북한을 이루는 한반도가

정확하게 나뉘어진 것이죠.

* 일각에서는 이러한 세종대왕 업적들이 가능했던

이유가 태종이 선위를 통해 군권을 잡아주어서

가능했다는 해석도 있답니다.

다섯번째, 앙부일구

해와 그림자를 이용한 해시계인데요.

당시의 언어들은 대부분 한자였고,

한자는 양반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고급언어였기에

당시의 백성들은 글을 몰랐다고 해요.

그래서 12지신으로 그림을 그려

시간을 알 수 있는 앙부일구를

장영실이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고 해요.

*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시계

여섯번째, 자격루

물시계의 일종인 자격루인데요.

자격루에 대한 기록은 통일신라나

고려 때에도 있었지만

관리가 하나하나 확인하는 등의

번거로운 과정이 있었기에

쓰임새가 적었다고 해요.

근데, 이때 장영실과 함께

자동 시보장치로 재편성하여

활용도를 높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세종대왕 업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신기전.

신기전은 조선시대의 화약 무기로,

불씨를 손으로 점화해 발사하는

유통식 화포였다고 해요.

여섯번째, 정간보.

리듬을 해아릴 수 있는 악보로

음의 길이를 명확하게 표시할 수 있는

악보를 창안했다고 해요.

* 이러한 악보는 당시 대형나라였던

중국에도 없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지금봐도 파격적인

애민정치도 있는데요.

1. 관비들의 산후 휴가를 100일로 늘리고,

그의 남편에게도 산후 휴가를 주었다.

2.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궁궐로 초대해

양로연을 베풀거나,

100세가 넘은 노인에게는 쌀과 옷을 내려주었다.

3. 노인과 어린이가 죄를 범했을 때에

얼굴, 팔에 죄명을 표시하는 '자자형'을 금했다.

4. 죄수의 자식들 중, 보살펴 줄 사람이 없을 때,

국가가 나서서 부양할 사람을 지정해주었다.

5. 금부삼복법을 도입하여,

사형수를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3심을 거쳐

판결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등으로 다양하고 섬세한 애민정치를

확인할 수 있었답니다.

아니 어쩜 이렇게 섬세하죠..?ㅠㅠ

그리고 애민정치의 끝판왕.

세종대왕 업적, 훈민정음.

조선시대 세종 때 창제된 언어로

과거에는 세종의 지시 아래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의 실무를

맡아 개발되었다 알려졌지만,

최근 관련된 문서들이 번역되면서

한글은 세종 혼자서, 혹은 문종이나 세조 등의

직계가족의 도움을 받아 단독 창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요.

그래서 훈민정음의 뜻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세종의 후대손들에게서

한글로 쓴 편지, 어필을 볼 수 있음)

이렇게 완벽했던 왕이기에

세종대왕 아들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는데요.

1. 장남, 문종

장남으로 태어나 함께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해요.

하지만, 각 부모의 3년상을 치르며 건강이 악화되고,

어린 아들인 단종만 남겨두고 39세라는 이른 나이에

요절한 인물이죠.

2. 둘째아들, 세조(수양대군)

차남으로 태어난 수양대군인 세조는

형의 아들인 단종이 보위에 오르자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군권을 잡아 보위에 오른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와 비슷한...?

루트를 걸은 아들이에요.

후대왕으로는 예종과 성종이 있답니다.

세종대왕과 업적에 대해 찾아보던 중

되게 웃긴? 웃픈?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세종과 황의(영의정)에 대한 사건이에요.

황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

그리고 정치가이자 정승인데요.

조선에서 가장 오랜기간 동안

영의정을 역임한 인물로

영의정은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

총 24년이라는 시간동안 정승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해요.

정승의 자리에서 보수적이고 강직하게

세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특히, 강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정책 회의에서 굵직한 의견을 내었고

회의나 토론을 거쳐도 대부분 황희의

의견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세종대왕은 약 20년이라는 시간동안

황희의 영의정 사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세종이 붕어하기 4개월 전인 1449년에서야

관직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또, 막 부려먹었다는 것보다는

사람이 요직에 오래 있다보면

주변의 시기와 질투로 음모를 받기 마련인데,

세종은 그런 일들에서 황희를 지키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썼다는 해석도 있다고 해요.

(실제로 황희의 건강이 나빠졌을 때,

재택근무나 가마를 내려주는 등

배려했던 기록이 있음)

그렇다면 오늘 다뤄본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일까요?

태종의 6남으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총명함과 성품으로 왕세자 자리에 오르고

태종의 선위로 왕에 오른 인물.

그리고 약 32년의 재위기간 동안

농학, 문학, 사학, 언어학, 음악, 법학,

경제학, 재무학, 회계학, 물리학, 군사학, 천문학

등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많은 치적을 남긴

조선 최고의 성군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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